애자 언니는 오랜 기억 속 사람입니다. 블친의 글을 읽고 불현듯 떠오른 언니가 이제야 새삼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많은 세월이 흐른 탓인지, 제 나이가 너무 많아진 탓인지, 사람이 되어 가는 탓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부모 형제와 인자한 외할머니와 풍족한 삶을 살아가던 어린 시절의 저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기에 언니의 아픈 마음은 이해조차 못했습니다. 애자 언니의 삶을 반추해보면 그 삶이 너무 잔인해서, 하느님 거기 계신 거 맞냐고 항변하고 싶어져요. 그때는 그걸 몰랐어요. 불현듯 떠오른 애자 언니,
제가 태어나 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어느 날부터 두 언니 외에 우리 곁엔 언니가 하나 더 있었어요. 업어주고 맛있는 걸 만들어주고 우리와 놀아주고 한없이 착하고 순박한 애자 언니를 우리는 정말 좋아했어요.
언니 등에 업혀 있으면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었거든요. 성장해서 우리에게 온 언니는 외할머니가 하는 가게를 도우면서 지냈지만 그땐 그 언니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왔는지, 우리에게 설명도 없었고 우리도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쌍커플 진 커다란 눈, 맏며느리같이 두둑한 얼굴에 자그마하고 당찬 애자 언니는 일도 잘하고 큰소리 한 번 내지 않는 순딩이였어요.
순딩이였지만 그래도 당찬 언니는, 나눠줬는데도 더 달라고 떼쓰는 거지와 실갱이하다 무서운 줄 모르고 연탄집게까지 들고 거지와 한바탕 싸우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 옛날엔 나병환자와 거지가 많아 시도때도 없이 닫혀진 대문을 두드리곤 했거든요. 할머니의 쌀독에는 그들을 위한 곡식이 있었고, 가마솥 밥은 항상 나눠지곤 했습니다.
애자 언니는, 어느 해 시집을 간다고 잘생긴 도마 아저씨와 웨딩마치를 울리며 작은 동네가 들썩들썩, 날콩이 날아가고 색종이 흩날리며 작은 성당에서 혼인을 했어요. 두 사람의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들에서 동생들과 놀다가 뜬금없이 찾아가던 애자 언니네는 알콩달콩 세 아이가 태어났고, 밭에서 일하던 언니는 우리가 왔다고 감자 갈아 감자전을 구어주곤 했어요.
그러던 어느 해 도마 아저씨가 폐병에 걸려 아프더니 급기야 아이 셋을 남겨두고 하늘로 떠나버렸답니다.
애자 언니의 삶은 참으로 지난했어요. 아이들과 사느라 안해본 일이 없고 그 당시 시골에서 하는 일이란 농사짓는 일 외에는 건물 현장에서 하는 노가다 일 뿐이었어요.
저는 어린 시절 서울로 올라왔고 들리는 소문만 무성하게, 아들 없는 나이 먹은 아저씨 아들 낳아주러 들어갔다. 세 아이들은 지들끼리 살고 있으며, 그래도 빗나가지 않고 모두 착하게 공부 잘한다. 어느 해는 나이 먹은 아저씨도 죽었고, 낳아준 아들도 죽어 그 집에서 나와 아이들에게 돌아갔다는 후문이었어요.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고향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엄마와 문상 갔다가 애자 언니를 찾아갔습니다.
다 쓰러져 가던 옛 초가집은 번듯한 기와집이 되었고, 초인종을 누르니 청청하던 애자 언니가 늙수레한 할머니가 되어 문을 열고 나왔어요.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와 해후한 언니는 온 몸이 병들어 병원 갈 일만 있다고 하소연했고요. 아이들이 다 잘 커서 그 아이들과 잘 살고 있는 모습에 안도하며 우린 또 기약없이 헤어졌어요.
삶은 살아가는 일이 아니고 살아 내는 일 같아요.
어쩌다 태어나서 고생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금수저로 태어나 풍족하게 살다 가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래도 어느 집이나 상처 아닌 일 없고 불화 없는 집이 없더라구요. 살아가는 게 아니라 죽어 가는 일일지도 모를 한 생에서 어떻게 살아야 삶의 끝에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해서 살고, 즐겁게 살고의 상투적인 일들은 당연한 거고요. 이 나이가 되니, 빠름이 약간 느림이 되고 잠시 멈추어 지난 날을 반추하고, 이렇게 글도 쓰다가 성찰도 하고 반성도 하게 되는 지금의 이 상황이 평화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혼하여 애 낳고, 인간관계에서 온갖 스트레스 받았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사랑했던 사람을 하늘로 떠나보낸 일도 있었고, 사랑하는 부모님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지만 그런 일들은 제 삶에서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어요. 그러나 세상 공평한 일이 죽음앞에 서는 거죠.
애자 언니처럼 좀 일찍 겪지 않았고 늦은 나이에 찾아왔다는 것이지만, 누구에게나 올 죽음이고, 누구나 홀로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카페 본알레에서 후배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추억을 더듬다 보니 애자 언니에게 무심했던 저를 반성하게도 됩니다. 더 나이 먹기 전에 고향의 애자 언니를 한 번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입니다.
분당 야탑동의 카페 본알레는 우리가 자주 찾아가는 곳입니다. 큰 길가에서 조금만 들어가도 외진 산이 나와요. 산 아래 다세대 주택들이 있는데 이 카페는 단독 건물의 1층에 자리 잡고 있어요. 도시에서 멀리 나온 듯 맑은 산공기, 소음이 사라진 한적한 카페랍니다.
점심 시간이 지나 커피타임에 조금만 늦어도 맛있는 빵은 다 소진되어 버리는 곳이지요.
아마도 카페 사장님이 꽃을 좋아하는지, 봄이면 온갖 꽃들이 정원에 둘러 핀답니다. 그중 수국꽃이 정말 황홀하게 피는데 화분에 심은 수국이 겨울을 잘 이기고 꽃을 피웠네요.
카페에 앉아 블로그를 이야기하고 글감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촬영을 하고 앞날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즐거워요. 하릴없이 누군가의 흉을 보고 쓸데없는 수다를 떨고 돌아 왔을 때의 허무감보다는 훨씬 의미 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