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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삼천포로 빠지다

by 아봉베레 2025.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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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70년대에 "삼포 가는 길"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어쩌다 초대권이 생겼는지 저는 아버지 몰래 서랍에서 표를 훔쳐, 가서는 안 되는 성인 영화를 본 것이지요. 황석영의 단편 소설 삼포가는 길을 영화화 것인데 내용도, 다른 배우들의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자 배우의 발랄한 연기는 기억에 있어요.

영화의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던 여주인공 문숙씨를 8년 전 일본 교토에 여행 갔다가 한 고궁에서 딱 마주쳤던 일은 놀라웠어요. 오랜 세월이 흘러 반백의 머리를 그대로 질끈 묶고 선물가게에 서 있던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고 인사할 뻔 했다는 사실.

삼포 가는 길 포스터

 
황석영의 단편소설 삼포 가는 길에 등장하는 삼포라는 지역이 실제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명확하지 않은데 전 그곳이 삼천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처럼 일부 사람들이 삼포(三浦)가 경상남도 삼천포(현 사천시)로 의미한다고도 본다네요. 삼포라는 지명과 발음이 비슷하고, 과거 어업과 해운업이 발달한 항구도시였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삼포는 실제 지역이 아니라 고향, 이상향, 돌아가고 싶은 곳을 뜻하는 상징적인 장소일 가능성이 크다고 해요. 삼포는 실제 지역이 아니라 주인공들이 삼포를 향해 가지만 결국 도착하지 못하는 점에서, 사라져가는 고향과 떠돌이 노동자의 삶을 암시하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삼포는 개발과 변화로 인해 더 이상 예전의 정겨운 모습이 남아 있지 않은 곳으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삼포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사람들이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천포 아름다운 길

 

갑자기 삼천포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주일인 어제 식사 후 이따금 가는 건어물집에서 딸에게 보낼 밑반찬용 아귀포를 사고 드라이브한다고 삼천포 바다를 지나면서 문득 그 영화 '삼포 가는 길'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삼천포와 사천이 통합되던 당시의 장면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나왔던 것도 생각이 났어요.
 
삼천포시와 사천군은 1995년 5월 10일에 통합되어 사천시가 되었어요. 1990년대 정부의 도시-농촌 통합 정책에 따라 전국적으로 많은 시·군이 합쳐졌는데 경남에서는 삼천포시(도시)와 사천군(농촌)을 하나로 합쳐 사천시로 변경했습니다.

삼천포시는 항구도시로 번성했지만, 행정구역이 작아 확장이 어려웠다네요. 또 사천군은 넓은 면적을 가졌지만, 도시 인프라가 부족했구요. 두 지역을 합쳐 행정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통합이 결정되었습니다.

드라마에서 보듯이 양쪽의 갈등과 많은 진통 끝에 통합이 되었고, 이후 사천시는 항공우주산업(한국항공우주산업 KAI)과 해양관광도시로 발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아직도 ‘삼천포’라는 지명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어, 삼천포 지역을 지칭할 때 여전히 ‘삼천포’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답니다. 저역시 그 지역을 삼천포라고 부르고 있어요.

사천 앞바다


사천(삼천포) 앞바다 남해는 마치 잔잔하고 깊은 호수 같아요. 섬과 반도가 많은 다도해 지형을 이루고 있는데, 석양이 참으로 아름다워요. 1년 딱 한 철 바다 장어인 하모회를 먹을 수 있는 맛있는 횟집이 있기도 하지요.

삼천포로 빠지다라는 표현은 원래 경남 삼천포(현 사천시)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예전에 서울에서 경남 진주로 가는 경전선(경상도 횡단 철도)이 있었는데, 삼천포로 가는 기차는 진주에서 갈아타야 했습니다. 진주로 가려던 사람들이 실수로 삼천포행 열차를 타면서 목적지에서 벗어났다는 의미가 생겼습니다.

이 때문에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 “엉뚱한 방향으로 새다”는 뜻으로 굳어졌답니다. 원래는 길을 잘못 들었다는 뜻이었지만, 점점 대화 중 주제가 벗어나거나, 본래의 목표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 확장되었습니다. 
 
"공부 얘기하자더니 삼천포로 빠져서 딴소리 하네.”

삼천포(현 사천시) 주민들은 이 표현이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고 생각해 이를 긍정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해요. 최근에는 “삼천포로 빠지는 게 더 재미있다”는 식으로 긍정적인 의미로 활용하기도 한답니다.

결국, 이 표현은 철도 노선에서 생긴 말이지만, 지금은 일상에서 이야기나 행동이 본래 방향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하는 관용구로 쓰이고 있습니다.

누리원 표지판

 
삼천포의 아름다운 길을 드라이브하다가 산 속으로 길이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오래 전부터 보았던 길인데 그쪽으로는 한번도 가보질 않았기에 무엇이 있는지 가보자며 발길을 돌린 거지요.

높고 깊은 숲 속에는 콘크리트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고 마당에서 남해바다가 시원하게 바라보였어요.

사천시 누리원

 
사천 시민이 마지막을 머무는 장례식장과 화장장인 누리원이었어요. 장례식을 치른 뒤 바로 옆 화장장도 이용하고 또 한 칸 위엔  납골당까지 함께 있어 아주 유용한 시설인데 이렇게 살아 있는 사람들을 피해 산 속에 숨어 있네요. 마당에서 바라보면 저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잔잔하게 펼쳐져 있고,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 이승의 산과 바다를 둘러보고 갈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듯했어요.
 
사실, 죽은 육신이 무얼 보겠어요. 결국 산 자들의 위안이겠지요. 그래도 저 산야를 보면서 결국 인간의 목숨은 아무것도 아닌 무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겠지요. 죽은 뒤엔 썩은 나무토막보다도 못한 게 인간의 몸뚱인데 너무 많은 것을 쥐고 살고 있어요.

남해가 바라보이는 언덕에서

 

남해는 좁고 복잡한 해상 지형으로 작은 섬들이 많고, 크고 작은 섬들이 산재해 있어, 배가 자유롭게 이동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수심 변화가 심하고, 얕은 곳과 깊은 곳이 섞여 있어 해상 전투 시 매복이나 기습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고 해요. 실제로 천혜의 군사적 요충지였고, 이순신 장군이 그 해류를 활용한 전술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랍니다.

한산도 대첩, 노량 해전 등 남해를 배경으로 이순신 장군의 관련 영화가  여러 편이 개봉되었는데,
 
한산(용의 출현) (2022년) 은 1592년 한산도 대첩을 배경으로 학익진 전술과 조선 수군의 전략을 다룬 영화였고, 명량 (2014년)은 1597년 명량 해전을 배경으로,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일본군 330척을 상대하는 이야기를 그렸으며, 개봉 당시 1,761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역대 박스오피스 1위 기록을 세웠습니다. 노량(죽음의 바다) (2023년)은 1598년 노량 해전을 배경으로,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와 그의 희생을 그린 작품이고,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영화였습니다.

특히 노량 해전은 현재의 경상남도 남해군 노량 앞바다에서 벌어진 전투입니다. 노량 해전이 벌어진 노량(露梁)은 경상남도 남해군과 하동군 사이에 위치한 바다이고, 지금의 남해대교가 걸쳐 있는 바다 지역이 바로 노량 해전의 전장이었습니다. 남해에서 서쪽으로 빠져나가는 해로의 중요한 길목으로, 일본군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역이었습니다.

남해군과 하동군이 맞닿은 좁은 해협으로, 조류(물살)가 강하고 속도가 빠르고 일본군이 대규모 함선을 운용하기 어려운 지형이라 조선 수군이 유리한 전투를 벌일 수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이곳에서 조선-명나라 연합군과 함께 일본군을 섬멸하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전투 도중 전사하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그의 죽음을 애석해 하며 눈물 지었던 영화 노량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위대한 장군이었고, 이 나라를 지켜준 선조였기에 우리가 지금 이 삼천포를 드라이브하며 맛있는 건어물도 먹고, 저 멋진 풍경을 구경도 할 수 있는 거겠지요.

딸에게 보내 줄 반찬, 소고기장조림,아구포무침, 두부조림

 

밑반찬을 만들며 위 스토리를 구상했어요.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며 혼자 있는 딸아이가 안타까워 매번 엄마는 반찬을 만들어 공수합니다. 경제가 힘들어지니 수입이 반으로 줄어 더 힘들어하는 딸에게 엄마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반찬이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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