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난로에 올려 김이 나는 주전자 뚜껑과 주둥이에 실을 넣어 다 뜬 스웨터를 풀고 또 풀었어요. 지금의 스팀다리미 대용이었을 거에요.
그땐 지금처럼 실이 많지 않았을 때였어요. "너희는 기술이나 이런 거 절대 배우지 마라" 고생한다는 의미였을 텐데 뭐 하나 제대로 배운 기술이 대를 물려 할 수도 있는 요즘 세상은 모르셨다는 얘기죠.
엄마 닮아 뜨개질을 좋아하는 저도 책상 아래 털실이 수북하게 쌓여 있습니다. 인내력이 부족해 장갑을 뜨다가 한 손만 끼고 다녔던 어릴 때와 다르게 완성작품이 보고 싶어 끝까지 뜨개질을 합니다.
제 안에 제가 너무 많고 쓸데없는 걱정, 끝없이 떠오르는 잡념이 많아서 무언가에 전념하지 않으면 머리가 터져 나갈 지경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합니다. 티브이 앞에 맥없이 앉아 있는 시간은 너무나 무의미해서 요즘 유행하는 폭싹 드라마를 보면서도 뜨개질을 해요. 드라마와 뜨개질의 콜라보는 아주 좋은 궁합이랍니다.
완성하는 기쁨, 누군가에게 선물했을 때 감동받는 모습이 좋아서 완성된 저것들은 거의 제 손에 없어요. 돈받고 팔라는 권고는 사양합니다. 상품이 되려면 프로가 되어야 하는데 제건 몇프로 부족하거든요.
드라마에 열중하다보면 무늬에 소홀해져서 다시 풀어야 하고, 무늬에 열중하면 드라마 대사가 무엇이었는지 되돌려 보기를 끝없이 해야 하지만 할 일 다 끝낸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뜨개질은 제 자신을 위한 소중한 시간입니다.
지난여름 여행을 떠나며 면세점에서 발견한, 프라다 뜨개가방은 일 년에 한 번 내놓는 고가의 뜨개가방입니다. 세상은 너무나 좋아져서 인터넷 검색만 하면 저보다 훨훨 빠른 누군가 벌써 패키지를 내놓고 저같은 사람의 구매욕을 기다리고 있어요. 다앙하고 고급진 패키지를 판매하는 곳의 링크는 나중에 걸게요.
실의 특성상 손가락과 손목만이 아닌 어깨까지 아파 단 한 개만 떠서 작년 결혼한 아들의 장모님에게 상견례 선물을 했어요.
세상 천지에 많고 많은 옷, 적은 금액만 지불해도 예쁜 옷들이 쏟아지는 세상에 제 실력으로 옷을 만든다는 건 너무 타산이 맞지 않아 저 두 개의 가디건만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스치듯 지나친 웹에서 비싸게 팔리는 꽃고무신을 흉내내어 딱 5개만 만들었는데 스티치를 할 때 손가락이 장난 아니게 아파 이것도 끝입니다!
이제 실을 구입하지는 않아요. 남아 있는 실로 틈새 취미생활을 하다 언젠가 이것도 못하게 될 날이 있겠지요.
엄마가 마지막으로 떠준 숄이 생각나요. 검고 부드럽지 않은 실에 반짝이가 섞인 숄에서 엄마 냄새가 나 이사하기 전까지 품고 다니다가 없앴는데 기억 속엔 남아 있어요.
삶의 모든 건 영원하지가 않듯이 이 또한 사라질 거고 저 또한 사라지겠지요. 앞으로는 AI가 뜨개한 상품도 많을 테구요. 손수 작업한 것들이 어쩌면 박물관에 전시될지도 모를 앞날까지는 생각지 않으려고요.
지금, 여기서, 나의 취미로 남아 있으면 되요. 세상엔 고수들이 넘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