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위암 진단을 받고 4년 투병하시다가 간암으로 전이되어 몇 개월 살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위암 4기 발견이니 아버지는 수술도 하지 않겠다는 걸 딸들이 애원해서 수술을 하셨어요.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저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다. 너무 아프다." 였어요. 수술을 괜히 하셨다면서요.
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에서 허벅지 관통상을 입고도 산에서 내려와 살아나셨던 그 용기와 기적은 아버지 삶에서 단 한 번뿐이었나봅니다.
만일 그때 수술하지 않으면 1년도 못살고 죽을 거라고 위협하던 의사 선생님 덕분에 4년을 덤으로 사신 건지, 항암 치료를 받고 힘들어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버지 연세 고작 60세 중반이어서 수술을 강요한 우리들이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도 생각이 나요. 멀리 외국에 있던 막내동생이 보고 싶으셨는지 찾으시길래, 동생도 돌아와 아버지 곁을 지킨 1주일의 시간은 가족 모두를 결집시킨 시간이었어요. 그때 거의 혼수상태에 빠지던 아버지가 "너희들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죠.
살아나실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정신이 반짝 돌아와서 엄마와 동생이 좋아라 얘기하던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즈음 읽은 스즈키 히데코의 <<삶의 끝에 서서>>라는 묵상집에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들과 '반조와 화해'의 작업을 갖는 시간이 있다고 합니다. 죽음 직전 '아주 건강이 회복된 것 같아 보이는 시간으로써' 그것을 반조返照 또는 중국사람들은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한답니다.
회광반조는 바로 죽음 직전 잠시 의식이 또렷해지고 기운이 돌아오는 순간을 말합니다.
이번에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양쪽 폐에 폐렴을 앓아 호흡곤란을 겪기도 하며 위중한 상태를 보였었습니다. 38일 간의 입원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고, 건강을 회복한 듯 보였어요.
부활절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서 신도들을 맞으며 축복했으나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부활절 다음날인 21일 월요일 아침 7시 35분에 선종하셨습니다. 다음 날 선종하실 분이 발코니에 나와 신도들을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회광반조의 시간이 아니었나 제 나름대로 추측해봅니다.
많은 이들이 죽음 직전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가족들은 다 나았나보라고 좋아하지만 그 다음 날 절명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생과 사의 문턱에서 마지막으로 빛을 발하는 인간 존재의 신비로움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지요.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후회하거나 감사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임종 직전 “더 사랑할걸”, “더 용서할걸”, “내가 하고 싶은 걸 더 해볼걸”이고 말합니다. 스즈키 히데코는 “지금 여기”에서 충실히 사는 것, 즉 사랑하고 용서하고 나누는 삶이 결국 후회 없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임종의 순간은 자신에겐 고통이지만, 자신과 화해하고, 타인과 화해하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만일 우리 곁에 임종을 앞둔 이들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들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환자라도 존재를 온전히 받아주는 자세가 깊은 위로와 연결을 만든다고 해요.
죽음은 끝이 아니라, 더 깊은 삶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삶과 죽음을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연속선상으로 봅니다. 죽음은 단절이 아닌 다른 차원의 삶으로의 전이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준비된 사람은 죽음조차 감사와 평화 속에서 맞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죽음이 다가올 때 지식, 지위, 재산은 아무 소용이 없고 오직 남는 것은 사랑을 주고받은 기억과 관계뿐입니다. 죽음을 앞둔 이들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며, 그들이 남기고 간 사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맺은 사랑은 죽음 이후에도 그 사람의 일부로 남듯이 먼저 떠난 아버지와 엄마의 육신은 가셨지만 그분들의 영혼은 제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후회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후회 없이 사랑하는 일이겠지요. 살아 있는 동안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왜 저는 사랑한다는 말이 그렇게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 자매들, 옆지기, 나를 믿어주는 친구들에게 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 한 번 못해봤습니다. 누군가 제게 사랑한다고 하면 되받아치지도 못하는 저는 제 스스로 간지러워져요~
언젠가 회광반조의 시간을 마주할 때도 간지러울지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