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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헨델의 Largo; 좋아하는 노래가 있으신가요?

by 아봉베레 2025.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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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골수에 박힌 가무歌舞의 유전자를 타고난 저도 가歌를 좋아합니다.

무舞는 대나무처럼 뻣뻣한 몸탓인지, 아니면 고딩시절 무용선생님이었던 담임이 고전무용 가르치며 넌 왜그리 대나무처럼 뻣뻣하냐는 말 탓인지 지금도 춤 앞에선 기가 죽어요.

기가 죽거나 말거나 춤은 안 춰도 돼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으니까요.

음악시간을 제일 좋아했어요.
나이차가 있는 큰 언니가 고학년에서 배워오는 노래를, 언니한테 배워 학급 자율시간에 노래하면 선생님께서 잘한다고 칭찬해주시는 것도 좋았고요.

학창시절마다 합창단에서 노래를 하며 지냈고, 예고를 졸업하며 졸업작품으로 뮤지컬을 했던 것은 제 삶의 최고였어요.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노래 한 곡 부르며 객석에 나와 대사 몇 마디 읊었던 것도 큰 영광이었죠.

경주 보문호의 아침

 
어느 해 성탄절 미사에서 성가대의 미사곡에 아름다운 솔리의 노래가 들렸어요. 마치 천사의 소리 같았다고 할까요. 미사에 집중할 수 없었고, 내내 고개 꺾어 뒤를 바라보았답니다. 그리고 바로 전 성가대에 입단했어요. 그 당시 시어머니와 함께 살며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고 있었는데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주 큰 위안이었어요.
 
30여 년 가까이 성가대를 하며 결혼식, 장례식, 연주회 등 온갖 기쁜 일 슬픈 일에 함께 했지요. 기쁜 일보다 슬픈 일에 함께 했을 때 더 큰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슬픈 일의 위로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중 어린 글라라의 죽음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아이가 백혈병에 걸려 투병하다 삶을 마감한 장례미사였는데 같은 반 아이들 몇 명이 맨 앞에 앉아 고개 숙이고 울고 있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오토바이 타다 하늘로 간 청소년의 죽음도 그렇구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일주일 후 어머니마저 돌아가셔서 줄초상 치르는 장례미사도 가슴 아팠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가 그날 오전에 장례미사 한 그 자리에서 오후에 혼인미사(결혼식)를 한다는 겁니다. 삶과 죽음은 늘 공존하고 있고, 누구에게나 오는 죽음 앞에 평등하기만 한데 왜 이렇게 욕심과 암투가 난무한 세상인 걸까요. 우린 곧 모든 걸 버리는 시기가 올 텐데 말입니다.

카페 앞 봄

 
성가대에서는 클래식 미사곡을 부르는데 유명 작곡가들이 작곡한 미사곡(Mass setting)은 가톨릭 전례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역사적으로도 예술성과 신앙심이 결합된 곡이기에 대축일인 성탄절과 부활절엔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곡이나 작은 미사곡, 베토벤, 하이든, 비발디가 작곡한 아름다운 미사곡 등을 성가대에서 부른답니다.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도 해요. 부활절엔 미사 후 파견곡으로 헨델의 할렐루야를 벅찬 감동으로 부르는데 이 또한 매년 기다려지는 순간입니다.

서울 방배동성당

 
할렐루야는 헨델의 대표작인 오라토리오 《메시아 (Messiah, HWV 56)》의 2부 마지막 곡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합창곡 중 하나죠.

장엄하고 반복되는 “Hallelujah” 선율이 특징인데 강렬한 오케스트라 반주와 4성부 합창이 웅장하게 어우러지고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부분은 점점 고조되며, 점진적으로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가는 헨델 특유의 바로크 시대 대위법(Polyphony) 기법으로 드러나는 곡입니다.

재미있는 사실로, 영국 국왕 조지 2세가 초연 때 이 곡을 듣고 감동해 자리에서 일어섰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그 영향으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공연장에서 “할렐루야 합창”이 시작되면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어요.

미사 후반 파견 후 할렐루야를 부르면 신자들이 거의 빠져나가고 끝까지 들어준 몇 안되는 분들의 박수가 또 그리도 감동이라는 거지요.

헨델의 초상화

헨델은 독일 태생이지만,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고,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에서는 가톨릭 미사곡 전통보다는 찬송가, 오라토리오, 앤섬(Anthem) 등 다른 형식의 종교음악이 중심이었어요. 그래서 바흐처럼 미사 통상문에 맞춘 전례용 미사곡은 쓰지 않았습니다.

가톨릭 미사곡은 작곡하지 않았고, 대신 성공회 전통에 맞춘 대규모 종교음악과 오라토리오를 남겼어요. 하지만 그의 종교 작품들도 경건함과 장엄함으로 전례 외의 공연에서 많이 연주되고 사랑받고 있습니다.

비록 가톨릭 전례 미사에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를 찬양하는 내용이라, 많은 교파에서 종교 행사나 콘서트에서 자주 연주됩니다.

질 때 예쁘지 않은 플라타너스도 사진으로는 아름답네요.

 
그럼에도
전 헨델의 곡을 좋아해요. 그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헨델의 라르고Largo, Ombra mai fu입니다.
이 곡은 헨델의 오페라 크세르크세스 (Xerxes)의 서막 부분에 나오는 아리아로, 1738년에 작곡되었어요.
아리아의 가사는 크세르크세스 1세(페르시아 왕)가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을 보며 감탄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노래합니다.

가사는 짧고 단순하지만, 곡의 선율과 어우러져 매우 평화롭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실제로 노래할 때에도 마음안 모든 고요를 다 짜내어 평화를 주십사 기도하듯이 노래하는데 울컥하지요.

 


그 어떤 나무의 그늘도
이토록 사랑스럽고 상냥하고
부드럽지는 않았네.

 
 
이 곡은 느리고 장중한 분위기 덕분에, 템포 지시어인 Largo (느리고 폭넓게)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보통 “헨델의 라르고” 하면 이 곡을 말해요.

단원 50,60명이 부르는 할렐루야는 장엄하고, 느리고 폭넓게 부르는 라르고는 아름다워요.
추억의 옷을 입고 그날의 노래를 떠올리면 마냥 행복하기도 하지만, 아직 합창단원으로 더 노래 부를 수 있음에도 소도시의 특성상 큰 합창단에서 그때의 장엄함을 노래 부르지 못한다는 건 참 많이 아쉬워요.
 
추억은 버린 헌옷과 같다는 말도 있지만, 이렇게 괜히 버린 황금 헌옷 다시 주어와 음미해보는 기쁨도 아주아주 큽니다. 꼭 다시 라르고를 부를 수 있기를 희망하며 오늘은 다시 듣기하며 일상을 시작해야겠습니다~^^

2022년 11월 프로젝트 합창단 연주회에서 미사곡을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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