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따뜻한 소금차 한 잔 마시고, 머리를 감고 화장하고 제 자리로 출근을 합니다. 옷을 갖춰 입지는 못해도 잠옷을 평상복으로 갈아 입습니다. 일을 하다가 볼 일이 있으면 겉옷만 하나 걸치고 나갈 수 있으니 가내수공업을 하는 제가 어느 해부터인가 그렇게 습관을 들인 이유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시간의 구애가 없으니 가내수공업(재택)은 시간을 잘못 쓰면 몸도 망가지고, 하루를 제대로 이용할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제가 정한 루틴은 월수금 오전엔 GX하러 헬스장, 화요일 오전엔 우쿨렐레를 배우러 가고, 목요일은 하루를 통째로 비우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이나, 밀린 집안 일, 늦잠 자는 일을 합니다. 그외에도 화수목 저녁엔 미사와 성가연습 등이 있고, 매일 틈틈이 책 만드는 일을 합니다. 아직은 이 모든 일을 소화해낼 수 있으니 감사할 일이지요.
며칠 전부터 책장 속 작은 문고집 《무서록》을 꺼내 보고 있습니다. 오래 전 수필 공부할 때 교재처럼 읽고 들었던 이태준의 무서록은 제목 그대로 '두서없이 쓴 글'이라는 뜻으로 일상과 자연,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이태준의 유려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두서없이 쓴 글이 이렇게 유려한지 다시금 읽으며 감탄합니다. 옛분들의 성찰과 철학이 엿보이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울림이 큰 고서입니다.

命題 其他 라는 제목의 글은 7개의 짧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題材제재 잡기장이 책상에 하나, 가방에나 포켓에 하나, 서너 개 된다. 전차에서나 길에서나 소설의 한 단어, 한 구절, 한 사건의 일부분이 될 만한 것이면 모두 적어둔다. 사진도 소설에 나올 만한 풍경이나 인물이면 오려둔다. 참고뿐 아니라 직접 제재로 쓰이는 수가 많다. 나는 사건보다 인물을 쓰기에 좀더 노력하는데 사진에서 오려진 인물로도 몇 가지 쓴 것이 있다. 제재에 제일 괴로운 것은, 나뿐이 아니겠지만, 가장 기민하게, 가장 힘들여 취급해야 할 것일수록 모두 타산지석으로 내어던져야 하는 사정이다. |
글을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잡기장을 서너 개나 가지고 다니면서 전차에서나 길에서나 멈추어 서서 모두 적어두었다는 이태준처럼 글을 쓰는 이에게는 제재를 고르는 일이 참 어려운 일이에요. 나이 어릴 땐 길을 지나다가 걸인을 봐도, 시멘트 블럭 사이를 비집고 나온 풀꽃을 보고도 글을 쓰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은 스마트폰이 있어서 사진을 찍고, 메모장에 쓰고 싶은 말을 적어놓기도 하지만, 그때는 수첩과 펜은 항상 가방 속 필수품이었죠.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써서 동인들과 나누며 뼈아픈 혹평을 듣고 다시는 글을 쓰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며 글방을 나오지만 또 금세 글감을 찾아 두리번 거리던 그날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런 글이라도 쓴다고 하겠지요.
이태준도 제일 괴로운 것이 제재라고 하였네요.
이태준(李泰俊, 1904년 11월 4일 ~ ?)은 소설뿐만 아니라 수필 분야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수필집 '무서록(無序錄)'은 1941년에 출간되었으며, 김용준의 '근원수필'과 함께 한국 현대 수필 문학의 쌍벽을 이루는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호는 상허(尙虛),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수필가입니다.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에서 성장하였습니다. 1925년 단편소설 '오몽녀'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였고, 이후 '달밤', '복덕방', '가마귀' 등 주옥같은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한국의 모파상'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文章 '내 문장'을 쓰기보다는 될 수만 있으면 '그 작품의 문장'을 써보고 싶다. 우선은 '그 장면의 문장'부터 써보려 한다. |
내 문장을 탈피할 수 없는 게 모든 글쓰는 이들의 고심이겠지요. 그 작품의 문장을 써보고 싶다는 말처럼, 똑같은 글이 아닌 작품 하나하나만의 독창성이 있는 글을 쓰고 싶지만, 매번 같은 글이 나오는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推敲 소설만으로 전업을 못 삼는 것은 슬픈 일이다. 충분히 퇴고할 시간을 얻지 못한다. 이것은 시간에만 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의 문제가 될 것도 물론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으로 책임을 피하자는 것은 아니다. 아마 조선문단 전체로도 이대로 3년이면 2년을 나가는 것보다는 지금의 작품만 가지고라도 3년 동안 퇴고를 해놓는다면 그냥 나간 3년보다 훨씬 수준 높은 문단이 될 것이라 믿는다. |
이태준은 1933년 박태원, 이효석 등과 함께 문학 단체 '구인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1939년에는 문예지 '문장'을 창간하여 책임 편집을 맡았습니다.
해방 후인 1946년 월북하였으며, 이후의 행적과 사망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태준의 작품은 그의 섬세한 문체와 깊이 있는 사유로 인해 현대에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 우리는 며칠 전에 김유정, 이상 두 고우(故友)를 위해 추도회를 열었다. 세속적인 모든 것을 비웃던 그들이라 그런 의식을 갖개 도리어 미안스러웠으나 스노비즘을 벗지 못한 이 남은 친구들은 하루 저녁의 그런 형식이나마 밟지 않고는 너무 섭섭해서였다. 생각하면 우리 문단이 있어온 후 가장 슬픈 의식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을 잃는 것도 아픈 일인데 한번에 두 사람씩, 두 사람이라도 다같이 그 존재가 귀중하던 사람들, 그들이 한번에 떠나버림은 우리 문단이 빨리 가실 수 없는 상처라 하겠다. 최초의 작품부터 자약(自若)한 일가풍을 가졌고(一家風)을 가졌고 소설을 쓰는 것이 운명인 것처럼 만난(萬難)과 싸우며 독실일로(篤實一路)이던 유정, 재기며 패기며 산(山) 매와 같이 표일(飄逸)하던 이상, 그들은 가지런히 선두를 뛰던 가장 빛나는 선수들이었다. 이제 그들을 보내고 그들이 남긴 작품만을 음미할 때 같은 길을 걷는 이 벗의 가슴에 적이 자극됨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최근 수삼년 내에 우리 문학은 괄목할 만치 자랐다 하겠다. 내가 읽은 범위 내에서도 유정의 <봄봄>, 이상의 <날개>와 <권태>, 최명익의 <비오는 길>, 김동리의 <무녀도> 이선희의 <계산서>, 정비석의 <성황당>이다. 그 전에 보지 못하던 찬연한 작품들이다. 군데군데 거친 데가 있으면서도 대체로는 과거의 다른 신인들이나 또 어느 기성작가들의 초년작에서는 찾을 수 없는 쾌작들이었다. … 중략 … 문단의 자리는 임자가 없다. 좋은 작품을 쓰는 이의 자리다. 흔히 지방에 있는 신진들은 자기의 지반(地盤)이 중앙에 없음을 탄(歎)한다. 약자의 비명이다. 김동리는 경주, 최명익은 평양, 정비석은 평북에 있되 빛난다. 예술가는 별과 같아서 나타나는 그 자리가 곧 성좌의 일부분이다. 중앙의 우선권은 잡문(雜文)에 밖에 없는 것이다. 잡문을 많이 써야 되는 것은 중앙인들의 차라리 불행이다. 잡문에 묻혀 썩는 사람들이 중앙이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지 멀리서 바라보라 … 중략 … 모파상의 시대에도 여론의 침해가 작가들에게 심했던 모양으로 모파상은 그의 어느 단편 서문에 이런 뜻의 말을 써놓았다. … 독자는 여러 가지 사람들이다. 따라서 가지가지로 요구한다. 나를 즐겁게 해 달라 나를 슬프게 해 달라 나를 감동시켜 달라 나에게 공상을 일으켜 달라 나를 포복절도(抱腹絶倒)케 하여 달라 나를 전율케 하여 달라 나를 사색하게 하여 달라 나를 위로해 달라 그리고 소수의 독자만이 당신 자신의 기질에 맞는 최선의 형식으로 무엇이든지 아름다운 것을 지어 달라 할 것이다. … 중략 … 기질에 맞는 것을 쓴 작가에게는 상식 혹은 개념 이상의 창조가 있다. 그러나 기질에 맞지 않는 것을 쓴 작가에게는 기껏해야 상식이요 개념 정도다. 종교는 윤리학이기보다는 차라리 미신이기를 주장한다. 문학은 사상이기보다는 차라리 감정이기를 주장해야 할 것이, 철학이 아니라 예술인 소이(所以)다. 감정이란 사상 이전의 사상이다. 이미 상식화된, 학문화된 사상은 철학의 것이요, 문학의 것은 아니다. |
이태준의 《무서록》이란 수필집은 명칭에 맞추는 듯 서문도 없고 발문도 없다. 또한 이 책에 수록된 어느 수필을 읽어보아도 치밀한 구성에 의해 쓰여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도 읽고 나면 가슴에 와 닿는 무엇이 있다. 바로 그 점이 수필이 갖는 매력이다. [무서록의 재평가를 위하여] 서문에서 수필가 박연구
이태준은 월북작가입니다. 《무서록》은 한국 현대 수필사에서 그를 절대로 빠뜨려서는 안 되는 책이라고 합니다. 월북작가인 그가 8.15일 이후 잊힌 이름이었지만, 1988년에 정부의 해금조치로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월북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주옥같은 그들의 정서에 가슴 저릿한 감동을 느낍니다.
수필가 박재식의 글에서
"무엇보다도 우리 후학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그의 깔축없는 문장이다. 물 흐르듯 쉽게 읽히면서도 그 속에서 어휘 하나, 아니 글자 하나도 첨삭을 불용하는 문장의 완벽함도 그러하거니와, 읽는 이의 가려운 데까지를 찾아 긁어주는 듯하는 회심의 묘사법은 지금의 우리가 가히 추종할 수 없는 경지의 문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고 하였습니다.
수필은 물 흐르듯이 쓰고 쉽게 읽히는 글이 좋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물 흐르듯이 쓰는 게 가장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훌륭한 수필가의 글들을 읽고, 직접 내가 써보고, 또 나 혼자 쓰고 좋다 하지 말고 다른 이의 평을 들어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됩니다.

토요일인데도 일하러 갔던 옆지기가 잠시 돌아와 밀면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나가는데 찔금거리며 비가 내리네요. 황홀하게 만개한 벚꽃이 이 비가 내리면 질 듯하여 사진에 담아 놓습니다.

밀면을 먹고, 아울렛에 가서 장까지 봐 와 넣어놓고 다시 앉아 아침에 시작한 글을 마무리합니다.
4월의 하루가 집니다. 세금 잘 내고 성실하게 일하는 민초들은 열심히 살고 있는데 돈이 많아 기득권이라고 하는 상위 몇 %와 정치인들의 일탈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죽음 앞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왜그리 욕심을 내는 건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저력을 가진 우리 국민들이 지켜낸 4월의 우리나라.
이 모든 사실들을 누군가 기록하여 역사 실록으로 남으리라 믿습니다. 그것이 글의 위대함입니다. 이태준의 무서록처럼, 정약용의 목민심서처럼 옛 고서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혜와 양심에 거리낌없는 진실, 거짓과 위장 허세없이 낱낱이 밝혀 문학으로서의 위상도 세우고, 또 역사적 사실로 남겨지길 바랍니다. 그게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