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엔 갈 생각조차 없었던 어느 해 그리스에 가자는 권유를 받았어요. 마침 그때 그리스는 국가부도 위기였고 구제금융과 긴축 정책 (2010~2015년)으로 대규모 실업과 사회 불안이 심화되는 시점이었는데 그리스는 IMF에 빚을 갚지 못하며 사실상 디폴트 상태에 빠져 있는 때였어요.
여행의 주체가 좋았고 10명의 적은 인원이어서 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여행을 주도하는 분이 문학에 관심이 많아 '그리스인 조르바' 책을 사주면서 꼭 함께 가자는 뜻을 전해왔어요.
<그리스인 조르바>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가 1946년에 발표한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물 알렉시스 조르바와 이상주의적이고 지적인 ‘나’(작중 화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삶과 자유, 열정, 지혜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지루한 책을 읽다가 끝까지 읽지 못하고 1964년에 제작된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를 찾아 봤습니다. 당시 안소니 퀸이 조르바 역을 맡아 큰 인기를 끌었는데 영화에서 등장하는 ‘조르바의 춤’(시르타키 춤)은 지금까지도 그리스 문화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지적 탐구에 머무르지 말고, 온몸으로 인생을 살아가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었고, 저는 조르바의 철학대로 읽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었어요.

사실 그리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어요. 단지 어릴 때 읽은 그리스 신화가 전부였죠. 그 신화가 얼마나 재미 있던지 밤 새는 줄 모르고 읽었던 책입니다.
그리스는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 남쪽에 위치한 나라로, 서양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 유명합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 고대 유적, 맛있는 음식, 그리고 활기찬 문화로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죠. 고대 그리스엔 민주주의, 철학(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이 있던 화려한 민족이었어요. 올림픽, 연극 등 서양 문화의 기초를 형성한 나라입니다.
첫 방문 때 제가 간 곳은 아크로폴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절벽 위에 세워진 정교회 수도원 메테오라 등등이었어요. 그때는 체코를 거쳐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방문했기에 구석구석 가보진 못했어요. 마침 그리스에는 우리 모임의 왕언니가 살고 있어서 또 한 번 더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요. 그리고 그 유명한 그리스인 조르바의 니코스카잔차키스 무덤이 있는 크레타 섬으로의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묘비명이 적힌 그곳을 꼭 가봐야겠다는 신념 하나로 우리는 길을 떠났어요.
두번 째 방문에서는, 아테네에서 코린토와 올림피아를 돌아보고 메테오라까지 다녀왔어요. 그러고난 뒤 모넴바시아와 크레타 섬을 방문하는 것이 목표였죠.

모넴바시아(Monemvasia)는 단 하나의 출입구라는 뜻으로 그리스 남동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아름다운 요새 도시였어요. 석회암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이 도시는 그리스의 지중해 진주라고 불릴 만큼 독특한 풍경과 역사를 자랑하는데 정말 진주 중의 진주였어요.
원래 육지와 분리된 작은 섬이었지만, 현재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차를 대고 걸어서 좁은 길로 올라갔어요. 외부에서 보면 거대한 바위산처럼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중세풍의 아기자기한 골목과 돌담 집들이 가득한데 붉은 지붕과 돌담 건물이 어우러진 고풍스러운 마을 풍경이 환상적이었어요.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카페, 레스토랑, 아트 갤러리가 곳곳에 있고 고양이들이 여유롭게 길거리 벤치에서 자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지중해는 에메랄드빛이었고 한 폭의 그림 같아서 한참 물멍하며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리스 속 작은 중세 왕국인 모넴바시아는 비잔틴 시대의 시간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 조용한 지중해 감성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딱 맞는 곳인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마을 안에는 중세풍의 멋진 부티크 호텔이 많은데, 혹시 다음에 또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중세풍의 호텔에서 묵고 싶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아테네에서 모넴바시아까지의 거리는 약 300km인데 우린 버스를 타고 약 5시간을 달려서 갈 수 있었습니다.
모넴바시아는 ‘그리스의 몽생미셸’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해안 절벽 위의 중세 도시로, 석조 건물과 고성이 매력적인 곳입니다. 프랑스의 몽생미셸을 가보지 않았으니 모넴바시아를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모넴바시아에서 크레타섬까지의 거리는 약 150~200km 정도인데 직항 페리는 없고, 보통 아래 두 가지 방법으로 이동합니다.
1. 육로 + 페리 = 모넴바시아 → 기티온(Gytheio) 항구 (차량 1.5시간)
기티온 → 크레타(키사모스) 페리 (약 6~7시간)
2. 육로 + 비행기
• 모넴바시아 → 아테네(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공항) (차량 4~5시간)
• 아테네 → 크레타(이라클리온 or 하니아) 비행기 (약 1시간)
저희는 모넴바시아에서 기티온 항구에까지 가서 밤새 페리를 타고 크레타 섬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크레타 섬은 미노아 문명의 흔적과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곳이었어요.




드디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지 앞에 섰어요. 우리 일행은 준비해 간 소주와 오징어를 놓고 대표가 큰 절을 하였고, 그를 기리기 위해 잠깐의 묵념을 했지요. 그때 그리스인들 몇몇이 그의 묘지에 참배하러 왔다가 동양의 낯선 사람들이 절하는 모습을 보고 무엇하러 온 사람들이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취지를 설명하니 그들은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고, 그리스의 지역 신문사인데 기사를 내도 되겠느냐고 물어와 그러마 했지요.
그렇게 마지막 여행지까지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오게 되었어요. 현지인의 안내로 올리브 나무가 많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우리끼리 노래하는 퍼포먼스 등 여러 가지 에피소우드가 많아서 여행하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어요.

Tip.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1957)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소설가, 철학자, 시인으로, 현대 그리스 문학을 세계적으로 알린 인물입니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자유, 신과의 갈등,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깊이 있는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생애와 배경
출생: 1883년, 크레타 섬(이라클리온)
교육: 아테네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파리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베르그송과 니체의 사상에 영향을 받음
여행과 사색: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철학과 종교 사상을 접함
사망: 1957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백혈병으로 별세. 유해는 그의 고향인 크레타 이라클리온의 성벽에 안장됨. 묘비명: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카잔차키스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깊이 탐구한 작가로, 그의 작품은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왕언니가 그리스를 떠나지 않는 한, 여행 계획을 더 세울 수는 있는 그리스,
아름다운 평원과 삐뚤빼뚤 많이도 심겨 있는 올리브 나무,
꼬치구이 요리와 맛있는 양고기, 토마토, 오이, 올리브, 페타 치즈를 넣은 그릭 샐러드를 많이도 먹었는데
이렇게 회상하다보니 그 향기가 추억으로 다가오네요.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 딱 맞는 편안하고 기쁜 여행이었답니다. 그리스는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