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에서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으라면 피아니스트의 전설, 베토벤 불멸의 연인, 노트북, 최근 영화로는 보헤미안 랩소디 등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많은 영화가 있는데 그중 정말 가슴 아프게 본 영화가 있습니다.
2009년에 개봉된 독립영화 똥파리입니다. 똥파리는 똥이나 썩은 고기 등에 알을 낳는 더러운 곤충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또 다른 의미로는 '똥파리 같은 놈'으로 귀찮고 성가시며 이득을 노리고 달라붙는 사람을 비하할 때 쓰는 말입니다.
또 “맨날 어슬렁거리면서 남 험담이나 하고 다니는 저 똥파리 같은 인간”이라고 조롱하고 비하하는 부정적인 인물, 기회주의자, 이익에만 달려드는 사람 등을 빗댄 표현이지요.
아마도 이 영화의 《똥파리》는 똥파리 같은 놈으로 쓰인 제목인 듯합니다.
양익준 감독이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한국 독립영화로, 가정 폭력과 사회적 폭력을 배경으로 한 강렬한 드라마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쏟아내는 주인공의 욕설과 그 환경에 어질어질합니다.
이 남자 상훈(양익준)은 폭력을 업으로 삼는 사채업자의 해결사로 살아가며, 세상에 대한 분노를 거칠게 표출하는 인물입니다. 입만 열면 거친 욕으로 말을 하고 욕으로 끝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저지른 가정 폭력으로 인해 어머니와 누나를 잃었고, 이후로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 자랐지요.
어른은 아이들의 거울입니다. 문제 부모 밑에 자란 아이들이 문제아가 되듯 대부분 가정 안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방황하는 예는 흔한 일이죠. 부모가 되기는 쉽지만 정작 부모 노릇은 하기 힘드니 부모가 되기 전 교육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상훈은 그저 살아남은 아이였습니다.
제대로 운다고 달래줄 어른이 없었고, 무섭다고 말할 수 있는 공간도 없었습니다. 그저 때리면 맞았고, 울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런 아이가 어른이 되면, 결국 자신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기는 사람이 됩니다. 그건 나쁜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그렇게밖에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폭력은 사람을 망가뜨리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폭력 이후에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살아가야 하는 일상입니다. ‘똥파리’는 그런 일상을 꺼내 보이는 영화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고, 상처받고, 그러나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또 하루가 지나가는 그 무서운 반복. 그 안에서 이 영화는 묻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야?"
어떤 집의 벽은 두터운 침묵으로 지어집니다. 그 안에서 들리지 않는 비명이 반복되고, 그 누구도 모르게 심장이 조용히 멍들어 갑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단순히 맞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잘못한 걸까’ 자문하며 자신을 점점 지워나가는 사람이 됩니다.
때로는 아이가 있어 참는다. 때로는 사랑이었다고 믿고 참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도망칠 곳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참습니다. 세상이 등을 돌릴 것 같아서,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등을 돌려버릴까 봐 반복되는 폭력 속에서 그들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집니다.
도망쳐도 소용없고,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거라는 그 깊은 믿음.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폭력 뒤의 다정함, 그 순간의 미안함과 눈물, 사과, 그 모든 것이 혼란을 만든다고 합니다. 사랑인지, 속박인지, 안식인지, 감옥인지 감정은 뒤엉키고, 어느 순간 자신을 탓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영화 속에서 그 인물이 맞는 장면보다 더 아픈 것은,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아”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참아온 시간은 몸보다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는 걸, 그 장면이 조용히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쏟아내는 주인공의 욕설과 그 환경에 어질어질하고 멀미가 나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하지만 그 욕설은 단순한 언어폭력이 아니라, 누군가가 차마 울지 못해 삼킨 눈물 같았습니다. 상훈은 욕처럼 세상을 말하고, 주먹처럼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의 분노는 어디서부터였을까요.
어릴 적, 사랑보다 먼저 배운 것이 주먹이었다면 그는 결국 그렇게 세상을 대하는 법을 익힐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뱉는 거친 말들과 난폭한 행동들은, 사실 자신을 감추기 위한 방어막처럼 보입니다. 폭력을 겪은 사람은 스스로가 다시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고 합니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종종 사랑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갈망합니다. ‘똥파리’는 그런 존재들의 이야기입니다.
더럽고 미운 존재가 아니라, 사랑받지 못해 방향을 잃은 존재. 그리고 그런 상훈 앞에 나타난 인물, 여고생 연희는 그와 전혀 다른 온도로 말을 겁니다. 함부로 다가가지도, 판단하지도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는 그 시선 하나가 상훈의 삶에 처음으로 멈춤표를 찍습니다.
상훈은 그제야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누군가 나를 바라봐줄 때, 누군가 "넌 똥파리가 아니야"라고 말해줄 때. 똥파리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과 너무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가정폭력, 분노, 슬픔, 그리고 치유되지 못한 어린 시절. 이 영화는 그 모든 것을 거칠고도 날것으로, 그러나 결국 조심스레 꺼내어 보여줍니다.
관객이 그 앞에서 멀미가 날 정도로 흔들리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모두 안에 작고 조용한 똥파리 한 마리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