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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맛집

지리산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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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섬진강을 사랑한 한 여자가 있었어요. 1년에 한 번 그곳을 지나 성묘를 가며 염불보다 잿밥에 눈길을 주던 젊은 여인은 어느새 머리 희끗 서리 앉은 초로가 되어 섬진강에 섰습니다.

수박향 나는 은어회, 새끼 손톱보다 작은 재첩국 식당들은 잘 보이지 않지만, 긴 금빛 줄기로 도도히 흐르는 섬진강은 그대로였어요.

물 맑기로 유명한 섬진강은 뱃사공들이 식수로도 사용했다는데 섬진(蟾津)은 두꺼비(섬蟾)의 나루(진津)라는 뜻으로 해석되고요. 그 옛날 두꺼비가 많이 살던 강이라는 설화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구례에서 바라본 섬진강

20여회의 성묘를 끝내고 이따금 가는 여행지로 변한 구례와 하동은 철길과 강길, 지리산 노고단이 병풍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합니다.

우리나라 남부에 위치한 지리산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맥의 중심부로,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호남정맥에 속한 산입니다. 해발고도는 1,915m로, 한라산(1,950m)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에요.

‘지리산(智異山)’은 지혜로움을 깨우치는 산, 또는 속세와 다른 신비한 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옛날에는 ‘두류산(頭流山)’으로도 불렸습니다.

지리산 노고단 오르는 길은 중턱의 성삼제휴게소에 주차를 하고 산림 우거진 산책로 따라 걸어갑니다.
노고단은 미리 예약을 해야 개방이 됩니다. 위 사진대로 신청하면 됩니다.

노고단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언젠가 김밥 싸들고가 노고단 근처까지 가서 먹고 내려왔던 추억을 떠올립니다.

지리산의 진달래

아직 초봄인 지리산 산책길의 진달래가 우리 가는 걸음걸음 놓여집니다. 무채색의 겨울 산에서 바라보는 저 진분홍 꽃이 왜 저리 처연하고 아름다운지요.

1995년 방영되었던 드라마 모래시계를 떠올립니다.  모래시계는 실제 역사적 사건들을 드라마에 녹여내어,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픔과 진실을 조명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는데 주인공 박태수(최민수)윤혜린(고현정)이 은신하던 공간이 지리산 자락이었죠.

그때 배경음악으로 깔리던 백학(Cranes)은 러시아의 민족시인 라술 감자토프(Rasul Gamzatov)의 시를 바탕으로 작곡된 곡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병사들을 추모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의 비극적인 운명과 시대의 아픔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지금도 그 노래가 들리는 듯합니다.

노고단 가는 길

지리산은 많은 시인과 작가에게 영감을 준 공간이기도 하지요.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가 함께 흐르는 산입니다. 단순한 산이라기보다, 역사와 생명의 숨결이 깃든 거대한 시간의 저장소 같은 느낌이에요.

섬진강은 문학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데 대표적으로 시인 김용택이 섬진강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쓴 시들이 유명합니다. 김용택의 시집 『섬진강』은 그의 고향과 자연,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작품이에요

이병주의  『지리산』은 한반도 분단의 상처와 함께 산과 사람, 삶을 깊이 있게 성찰한 걸작으로 남아 있어요. 한국전쟁과 빨치산의 이야기. 인간적인 고뇌와 이념 갈등, 그리고 지리산이라는 공간의 상징성이 깊이 있게 그려진 대하소설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리산은 이름만 떠올려도 우리네 조상, 할아버지 할머니의 애환과 숨결이 깃들어있고 처절한 그네들의 삶이 조명되기에 이토록 가슴이 저린가 봅니다.

지리산 노고단 길에서 옛 조상들을 떠올리고 드라마 모래시계를 추억하며 백학을 듣고, 이야기 보따리들을 펼쳐 끄집어낸 소중한 시간이 오늘로 저뭅니다. 그 많은 이야기를 기억해내느라 지친 몸은 그대로 침상에 누였지만 오늘의 감동은 누일수가 없어 이렇게 풀어놓고 갑니다.



섬진강 1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 가도 퍼 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 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 중략 ...

섬진강 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 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아봉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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