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수선사를 찾았을 때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작업복을 입은 건장한 한 남성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땡볕에 땀을 흘리며 커다란 돌을 올려 담을 쌓고, 매일 솟아나오는 풀을 뽑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 마당이 보이는 시원한 찻집에 앉아 시골 미숫가루가 들어 있는 맛있는 팥빙수를 먹고 있었습니다.
한참만에 땀을 닦으며 찻집으로 들어온 그 남성은 바로 이곳 수선사의 주지스님이었습니다.
지리산 웅석봉 기슭에 자리한 아름다운 사찰인 수선사, 처음 갔을 때만 해도 정원 곳곳을 막 다듬고 있었을 때인데 지금은 멋진 정원을 가진 사찰로 자리매림하고 있습니다.
소나무와 잣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사찰 입구에 넓은 연못이 있어 특히 여름에는 연꽃이 피고 작은 둔덕에는 수국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고 봄에는 벚꽃이 눈처럼 날립니다.
정원이 예쁜 절 마당에 날리는 벚꽃이 황홀하게 아름답습니다.
조경에 관심이 많은 주지스님이 가꾸시는 정원은 감탄을 자아내게 아름답습니다. 갈때마다 새롭게 바뀐 것을 볼 수 있어요.
연못을 가르지르며 나무로 만든 다리가 있는데 물에서 쉽게 썩지 말라고 가죽나무로 스님이 만드셨다고 합니다. 놀랍고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계신 스님입니다.
언젠가 중2 조카를 데리고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스님께서 조카에게
"몇 학년이고?"
묻습니다. 조카가
"중2인데요~"
하자
스님은
"어? 너도 중이가? 나도 중이다. 반갑다."
해서 우리 모두 박장대소하고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뛰어난 건축 조경 기술도 가지고 계시지만, 위트와 재치도 넘쳐나는 주지스님.
겨울의 수선사는 스산할 것같지만, 이미 세간에 많이 알려져 있어 관광객들로 인해 늘 인적이 끊이지 않습니다.
지리산 웅석봉의 정기가 사찰 아래에 잠잠하게 깔리는 듯 상서롭습니다.
시절인연이라 읽고 시절연인이라 생각합니다. 이만큼 살아보니 모든 물건도 때가 되면 고장나서 버릴 때가 오듯이 인연도 연인도 끊길 때가 되면 떠나더이다.
내가 떠나든, 그가 떠나든 우리 모두는 시절인연이겠지요.
몇년 전 열심히 가꾸던 담쪽 정원에 작은 수국을 심으시던 모습이 기억나는데 다시 몇년 만에 들른 수선사에 수국이 만발했습니다.
수국은 여러가지 색이 예쁜 꽃이지만, 스님은 소박하고 절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흰색과 연녹색의 꽃들로 채우셨네요.
몇군데 진보랏빛과 파랑 수국을 심어 아주 적은 양으로 포인트를 주었는데 왜 제겐 그게 앙큼하고 깜찍해 보이던지요.
정말 뽀인트 중 뽀인트, 스님의 미적 감각과 깜찍함이 엿보여 옆지기와 한참 웃으며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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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렇게 말입니다.
절을 한바퀴 구석구석 돌아야 주지스님의 손길이 닿은 곳곳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절이 작아서 관광 시간은 짧을 거구요.
그러고 난 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산청 주변의 신도들이 지어 납품하는 팥으로 만든다는 팥빙수를 먹으며 이층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절을 사방으로 다시 한번 음미하며 바라보면 좀 더 행복해집니다.
방문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카페는 오후 5시 30분까지 운영됩니다. 문의 사항은 전화번호 055-973-1096으로 연락하시면 되고요. 애완동물의 출입은 제한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신발 벗고 출입하는 현대식 해우소가 아주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