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절망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던 때 어느 후원회지 편집 봉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 출판사를 열었고, 그동안 써놓은 글을 엮어 제 수필집을 만들었어요.
책 만드는 일을 하겠노라며 그 수필집을 명함처럼 돌렸지요.
아무도 제게 책 만드는 일을 맡기지 않았어요.
그저 제 수필집 몇 권씩 사주는 걸로 끝난 그때, 저를 독려해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후원회지 첫 페이지에 매달 실었던 故 장영희 교수님의 에세이를 엮어 책으로
만들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었죠.
겁도 없이 Yes! 했습니다.
故 장영희 교수님의 글은,
늘 주요 일간지의 칼럼이나 책으로 접하며 존경하던 분이었고
쉽고 읽기 편하게 써내려간 글에서 마치 가까운 지인 같은 느낌을 받았던 분입니다.
그런데 후원회지를 맡게 되자 뜻밖에도 장영희 교수님의 글을 매달 가장 먼저 받아 교정하고
후원회지에 싣는 행운을 얻었으니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다며 정말 행복해 했었지요.

장영희 교수님과 평소 친분이 있던,
말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김점선(1946년 4월 24일 ~ 2009년 3월 22일)님은
장 교수님보다 두 달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 교수님의 유가족과 김점선님의 유가족께서 흔쾌히 허락하셔서
두 분의 글과 그림으로 작고 얇은 책 한 권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 서점에서 흔하게 살 수 있는 책은 아니었고, 후원회 가족들에게 선물로
나눌 책이었기에 최소한의 금액으로 최소한의 양만 찍어낸 책이었습니다.

故 장영희 교수님(1952년 9월 14일 ~ 2009년 5월 9일)은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수필가, 번역가, 칼럼니스트로도 활약한 분입니다.
장 교수님은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어 1급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업과 사회 활동에 매진하며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했지요.
특히 예전 그 시대에 장애인은 대학교에 입학하지도 못했는데
서강대학교 입학 당시 영문과장이었던 브루닉 신부는 장 교수님의 입학을 허락하며
"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보나요?"라는 말로 감동을 주었습니다.
1975년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하였고,
1977년 서강대학교 대학원 영문학 석사
1985년 뉴욕주립대학교 올버니 캠퍼스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 취득
1985년부터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컬럼비아대학교에서 1년간 번역학을 수학
코리아 타임즈(1987년~)와 중앙일보(2001년~)에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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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보잘것없는 외양의 책이지만,
그 어떤 양장본의 두껍고 화려한 책보다 훌륭한 내용을 지닌 책입니다.
그동안 만든 많지 않은 책 중의 하나를 책장에서 발견하고 문득 장영희 교수님의
그 주옥같았던 글들을 읽어보다가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수님의 글 하나하나 인간적이지 않은 것이 없고,
토씨 하나 버릴 게 없는 보석 같은 문체와 귀감이 되는 내용은
요즘 세상의 필독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의 제목으로 삼았던 "무릎 꿇은 나무"는 얼마전 블로그에 소개한
가문비나무의 노래라는 책의 그 나무에 대해 쓰신 글이라는 것을 지금 열어보며
알게 되어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무릎 꿇은 나무 ... 중략 ... 민숙아,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인데, 사람이면 누구나 다 메고 다니는 운명 자루가 있고, 그 속에는 저마다 각기 똑같은 수의 검은 돌과 흰 돌이 들어 있단다. 검은 돌은 불운, 흰 돌은 행운을 상징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이 돌들을 하나씩 꺼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삶은 어떤 때는 예기치 못한 불운에 좌절하고 넘어지고, 또 어떤 때는 크든 작은 행운을 맞이하여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는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아마 너는 네 운명 자루에서 검은 돌을 먼저 몇 개 꺼낸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남보다 더 큰 네 몫의 행복이 분명히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로키산맥의 해발 3,000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인 지대가 있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너무나 매서운 바람 때문에 곧게 자라지 못하고 마치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한 채 서 있단다. 눈보라가 얼마나 심한지 이 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그야말로 무릎 꿇고 사는 삶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 그런데 민숙아,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은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 온갖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나름대로 거기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며 제 각기의 삶을 연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슬픈 선율을, 그리고 또 때로는 기쁘고 행복한 선율을.... 민숙아, 너는 이제 곧 네 몫의 행복으로 더욱더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할 연습을 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라고, 이것이 아까 네 뒷모습에 대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민숙아, 사랑해. |
故 장영희 교수님의 삶은 장애와 병마를 이겨내며
문학과 교육을 통해 희망을 전한 감동적인 이야기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또한 제게도 큰 위로를 준 분을 잃었다는 슬픔이 컸습니다.
이렇게 그분을 기억하자니 아까운 분들은 왜 그리 빨리 가시는지
참 아쉽기만 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삶은 없으니
떠난 후에도 기억될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신 분들을 보며
교훈을 삼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