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네 마리의 고양이가 있습니다. 엄마 아리와 아빠 봉이, 그 자식들인 베희와 레이인데 아들이 결혼하면서 아빠와 아들을 데려갔고, 딸아이가 독립하면서 엄마와 딸을 데려갔어요.
아빠 봉이는 덩치도 크고 너부데데한 고양이입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기 자식들을 낳았을 때 아가들의 영양 가득한 사료를 몰래 먹으면서 폭풍 살찌게 되었어요. 우린 미처 아빠 봉이를 말리지 못했고요.
지방살이에 가장 필요한 운송 도구 중 하나가 자동차입니다. 이전에 1.4 터보엔진인 작은 승용차를 탔었는데 갑자기 SUV를 주문했다기에 처음엔 커서 제게 안 맞는다고 구시렁거렸으나 웬걸요. 이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차는 없다며 신나게 다니고 있습니다.
차가 도착하고 첫 시승을 하는데 운전대를 잡는 순간 갑자기 우리 아빠 고양이 봉이가 떠올랐어요. 너부데데한 모습으로 아무 데나 널브러져 자는 울 봉이와 제 차의 모습이 아주 흡사해 보였지요. 그래 오늘부터 네 이름은 ‘봉봉이’다~라고 개명했답니다.
저는 면허를 따면서부터 지금까지 운전하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운전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덜렁거리는 제가 걸어 다니며 잘 넘어지는 것보다 운전하고 다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믿고 있으니까요.
블로그를 할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언니, 우리 돈 좀 벌어봅시다”라며 저를 유혹한 후배의 달짝지근한 말에 선뜻 해보자고 ‘구글 애드센스로 돈 벌기’라는 책을 사서 읽으며 티스토리를 만들었고, 블로그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은 생각 없이 제 차 봉봉이를 타고 세상 구경하자는 뜻으로 ‘봉봉이의 세상 구경’이 되었습니다.
저의 첫 차였던 대우차 르망의 이름은 ‘허비’였어요. 그 당시 4살이던 아들이 즐겨 보던 만화영화에 나오는 자동차인 ‘허비’는 경주용 차였는데 결승점을 앞두고 두 동강이 나버립니다. 그럼에도 앞의 반쪽만 달려 1등을 한 ‘허비’를 아들이 무척 좋아했어요. 아들이 ‘허비’라 이름 짓고 저는 허비와 10년을 함께 했는데 IMF로 힘든 시기에 제 곁을 떠났답니다.
대우자동차의 르망(Daewoo LeMans)은 1986년에 출시된 대우의 첫 전륜구동 소형 승용차인데, 한국 자동차 산업의 중요한 전환점을 상징하는 모델이었어요. 르망은 독일 오펠(Opel)의 카데트 E(Opel Kadett E)를 기반으로 개발되었으며, GM의 T 플랫폼을 사용했습니다. 이 차량은 GM의 ‘월드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계는 오펠, 생산은 대우, 판매는 GM이 담당하는 글로벌 협업 모델이었습니다. 차명 ‘르망’은 프랑스의 내구 레이스인 ‘르망 24시’에서 유래되었으며, 내구성과 성능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위키백과 |
7번째의 봉봉이가 오기 전까지 애착이 많았던 자동차 중 스엠이가 생각납니다. 한 인간의 삶에는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 있어요. 해가 반짝 났다가 폭우도 내렸다가 천둥번개가 치기도 하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우리네 삶과 똑같은 여정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도 힘든 날이 엄습했고, 그 절망을 이겨내기 위한 일환으로 타고 다니던 남편의 차와 저 삼성 SM5, 스엠이와 맞바꾸게 됩니다. 차를 좋아하는 제가 탄 모든 차와 정이 들었지만, 저 차는 유독 애달픈 정이 들었던 차였는데 터진 머플러를 더는 수리할 수 없어 떠나보내는 날이었습니다.
4층 집에서 꽁무니가 사라질 때까지 서서 바라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안녕, 잘 가거라 나의 애마여!
블로그 탄생 배경을 적겠다하고 시작했는데 저와 인연이 있었던 차들의 나열이었네요. 저를 오랫동안 안전하게 태워주고 수만리 길들을 데려다 주었던 감정 없는 금속성의 차들과 저는 특별한 교감을 나누며 다녔어요. 장시간 운전에도 지치지 않은 제 차를 쓰다듬어 주며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었지요.
세상에 태어나 많은 인연들을 만났고, 고마운 인연이 더 많았던 제 삶을 돌아봤을 때 그래도 전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드는 밤입니다. 블로그와 자동차가 조합이 맞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모든 세상사가 조합이 맞을 수는 없지만) 생각해 보니 또 블로그가 세상의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기에 제가 할 수 있는 날까지 봉봉이를 타고 세상 구경한 것을 펼쳐놓겠다고 다짐합니다.
언제까지 운전할지는 모르겠지만,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힘들어지면 운전에서 손을 놓아야겠지요. 그날이 천천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 |
![]() |
왼쪽부터 아빠 봉, 아들 레이(수속성에 완전 애교냥); 오른쪽 딸 베희, 엄마 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