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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맛집

카프카의 변신을 찾아서 간 체코 황금소로 파란벽의 지붕 낮은 집을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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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80년대, 저는 아침이면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집에서 머리도 감지 못하고 출근을 했어요.

샤워는 물론 매일 머리도 감지 못하는 시기였으니 주일에나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공중목욕탕에 가서 일주일 동안 쌓인 때를 밀어야 개운해지곤 했었는데 매일 머리 감는 요즘 사람들에겐 실감이 나지 않는 이야기죠.
 
그 시기 우리나라는 군부정권의 인권유린이 빈번히 일어나는, 민주화를 탄압하던 시기였고, 사회적 경제적으로 가난을 면치 못하던 시기였어요. 범죄자를 색출한다고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죄없는 사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개죽음을 당하기도 했으니 참 무서운 시대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나마 저희는 부모님의 보호 아래 사회의 무서운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모진 꼴은 보지 않고 살았으니 천만 다행 감사하게 생각해요. 퇴근하여 집에 돌아올 때 시위때문에 버스가 정류장에 서지 못하면 최루탄 가스가 난무하여 코를 움켜쥐고 서울 동자동에서 청계천까지 걸어가야 했어요. 청계2가에 사무실이 있던 아버지가 공장 봉고를 대놓고 기다리곤 하셨죠.
 

체코 카프카가 집필하던 집

 
여러모로 앞날에 대한 공포와 사회적 혼란,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은 시기였던 그때의 유일한 문화 생활은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거였어요. 닥치는 대로 소설책을 읽었는데 유독 답답했던 청년기에 카프카의 <변신>은 제게 크게 다가왔습니다.
 
취업 시험에서 번번히 낙방을 하였던 때라 많이 위축되어 있었기에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가 마치 나와 같다는 생각에 책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 들어갔죠.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그레고르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커다란 벌레가 되어 있어 꼼짝도 못하게 되는 이야기인데 가족에게마저 버림 받는 그레고리오가 마치 저와 같다는 생각에 눈물 훌쩍이며 하룻밤새 읽어내려갔답니다.

실제로 저희는 물질적으로는 힘들었어도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었는데,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로나갈 수도 없는 사방이 막힌 작은 방안에 갇혀 있다는 답답함을 느끼며 살았었어요. 마치 벌레가 된 그레고르처럼요.
 
젊은 시절 절망적인 공감을 함께 느꼈던  "프란츠 카프카"를 찾아 체코를 방문하여 그가 집필하던 황금소로의 작은 집을 찾아갔을 때 만감이 교차했어요.

지붕이 곧 내려 앉을 것같은 작은 집은 카프카의 집은 아니었고, 글을 쓸 때 거주하던 곳이었어요. 지금은 카프카의 기념품이 작은 집을 가득 메우고 있답니다.

프란츠 카프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는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독일어권 작가로 실존주의와 현대 문학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인데 그의 작품은 주로 인간 소외, 불안, 부조리, 권력과 관료제의 억압 등을 다뤘습니다.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카프카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는데 그의 작품에서 이런 성장과정이 자주 반영되었다고 해요.
 
법학을 공부하고 보험 회사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글을 썼다고 하는데 폐결핵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했다고 하네요.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무력한 인간을 묘사하고 초현실적인 설정과 사실적인 묘사, 억압, 인간 소외, 실존적 불안등을 탐구하며 글을 썼다니, 그 시대 청소년이었던 제가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같아요. 

생전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사후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가 원고를 정리해 출간하면서 세계적인 문학 거장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현대 문학과 철학, 심리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해요.

 
황금소로 카프카의 집을 방문하고  성 비투스 성당을 찾았어요. 고개 꺾어 한참 바라봐야 하는 웅장한 비투스 성당은 체코에서 가장 큰 성당인데 이 대성당에는 여러 명의 체코 왕과 성자들, 영주, 귀족, 대주교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고 해요.  

 

체코 궁전의 지상은 천국이었고, 궁전 지하 감옥은 지옥이었다고 해요. 지하 감옥에 갇혀 있다가 죽어서도 빠져 나올 수 없었던 저 죄수의 해골을 보며 삶의 무상함을 느끼기도 했지요.

누구는 금수저를 물고 나와 궁전에서 화려하게 살아갔고 죄수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렇게 비참한 삶을 마쳐야 했을까 생각하며 지상으로 올라갔어요.

지하에서 지상으로

 

체코의 수도원 자리가 있던 식당에서 먹은 모라비스키 브라벡

 
그렇게 모질게 힘들었던 80년대 초에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어요.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딸 많은 집의 중간이었으니 나만 미워한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 살았었지요.
 
남편은 자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저를 사랑해주었고 그때에서야 제 자존감을 찾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으며 우여곡절이 많았던 날들이었는데  많이 행복했던 시기였기도 했고, 사연도 많았던 세월이기도 했어요.
 
지나간 세월을 더듬어 보면 누구나 마찬가지이듯 소설책 몇 권은 나올 거예요. 어떻게 그 세월을 살아왔나 싶기도 한데 그럴 때마다 저를 위로해 준 것은 책 속의 주인공이들이었고, 시인의 책 속에서 읽어 내려가는 시구였고, 한편의 영화에서 얻어지는 감동이었어요.
 
그래서 저 카프카 프란츠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가렛 미첼이, 대지의 펄벅여사가, 작가 박완서 한강, 일일이 이름을 거론할 수 없는 수많은 소설가 시인들을 존경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은 지금 나이에는 큰 일에나 작은 일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새옹(塞翁之馬)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며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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