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일이 권태롭고,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이 반복되어 의미가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피정避靜을 떠납니다. 피정은 시끄러운 세상을 피하여 깨끗하고 고요한 마음을 갖는다는 뜻의 '피세정념'(避世靜念) 또는 '피세정관'(避世靜觀) 의 준말입니다. '시끄러운 세상을 피해서 따로 고요하게 자신을 살펴보고 참 하느님의 뜻을 마음에 새긴다'는 뜻이지요.
성당에서 단체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우린 각자 개인이 갈 수 있는 곳을 찾아서 하루 피정, 또는 몇 박 며칠 묵으며 지낼 수 있는 수도원이나 수녀원 등의 피정집을 찾아 떠납니다. 마음이 산란하고 힘들 때 떠나 고요히 머물면 내면의 나와 마주하며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기고, 갈등의 해답을 얻을 수 있게도 되는 피정은 피난처가 아닌 그분의 부르심입니다.

2017년 즈음 갱년기때문에 화가 치밀어 주위 사람들과 싸움닭처럼 달려들어 싸우는 제 자신이 너무나 힘들어 마지막 피정을 다녀온 것이 일산 예수마음배움터의 에니어그램이었습니다. 저는 가슴형인데 옆지기는 장형이어서 저는 끝없이 질척대고 그는 무조건 돌진하는 이해할 수 없는 그와의 생활을 끝내느냐 마느냐 견디다 못해 다녀온 프로그램이었는데, 저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던 시간이었어요.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에 대해 안다는 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 알면서 살지는 못하지만, 알고 이해하고 노력하며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도 알았구요. 세월이 흐르고 보니 결국 제 호르몬 이상인 갱년기 탓이 컸다는 것. 또 돌진하기만 하는 경상도 사나이의 성격도 한몫 했다는 것.
자유롭게 지내다 오는 봉평 예수성심수도원에서의 하루, 기도부대들과 함께 떠난 날들도 있었지만, 정식 피정을 신청하여 다녀온 것은 참 오랜만의 일입니다.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의 피정은 자율로 이루어지는 피정이지만, 수도원 하루 생활의 루틴대로 움직이며 2박3일을 보냈습니다.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수사님들의 낭랑한 그레고리안으로 시작되는 성무일도와 아침미사를 함께 하면서 야행성인 제가 새벽잠을 깨고 미사에 참례합니다. 평소에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인데 수도원에 오니 가능해집니다.
수도원에서 마련해주는 꿀맛 같은 아침밥을 먹은 뒤 오후 기도 시간 전까지 자유로 이루어지는 피정입니다. 엄숙하게 입장하여 엄숙하게 퇴장하는 수사, 신부님들의 모습에서부터 경건함을 느끼는데 따로 피정을 하지 않더라도 그 모습에서 마음의 고요와 평화가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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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 수도원은 1909년 독일에서 서울로 진출한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덕원과 만주 연길, 한국전쟁과 피난 살이를 거쳐 오늘날 왜관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 안에서 이루어진 수도원입니다. 실로 많은 역사와 사실이 깃들어 있는데 그날 정문을 지키던 수사님이 수도원을 안내해주시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왜 지역 이름이 왜관일까 백과사전을 찾아봤더니 왜관倭館은 조선시대에 일본인이 건너와서 통상하던 곳을 말하며, 그곳에 설치된 행정 기관과 일본인 집단 거주 지역을 일컬어 부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요즘의 상공회의소와 대사관을 합쳐 놓은 개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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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일정이 끝나 칠곡의 가실성당도 찾아가고 가장 오래 되었다는 한옥집도 찾아다니며 왜관의 견문을 넓힙니다. 그중 왜관읍에 있는 시인 구상 선생님의 기념관을 찾았을 때 참 감격이었어요.
꽃자리/구상( (1919~2004)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고/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고/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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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시인은 북으로부터는 반동 작가로, 남으로부터는 독재정권의 반대자로 몰려 곤욕을 당한 지식인으로 평가합니다. 시집으로 『구상 시집』(1951), 『초토(焦土)의 시』(1956), 『까마귀』(1981), 『구상 연작 시집』(1985), 『유치찬란』(1989) 등과 자전 시집『모와 옹두리에도 사연이』(1984)를 펴냈으며 『구상 시 전집』(1986)을 간행했지요.
2004년 금관문화훈장, 1993년 제38회 대한민국예술원 상 문학 부문, 1980년 대한민국 문학상,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1957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1955년 금성 화랑무공훈장 등을 수상하였고, 2004년 5월 11일, 향년 85세에 폐질환으로 별세하였습니다. 장지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의 성 베네딕토 회 <왜관 수도원>에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만, 찾아뵙지를 못하였네요.
우리나라 질곡의 역사를 시와 글로 써내려간 구상 시인도 말년엔 폐질환으로 많이 힘들어하셨다는 병상에서의 글을 보면 지난 세월을 엉거추춤한 자세로 살아왔다고 자책하십니다. 시대의 위인도 저런 말씀을 하시는데, 그에 비할 수 없이 초라한 저는 얼마나 부끄러운 지난 날을 반추할까요.

왜관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공지영의 '높고 푸른 사다리'는 한때 인기 있는 소설이었죠. 신앙은 억지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응답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사랑의 본질인 인간적인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 사이의 충돌과 조화를 섬세하게 탐구하는 소설입니다. 수도원에 가기 전에 읽어봤으면 좀 더 다른 눈으로 보았을 텐데, 전 아쉽게도 다녀온 뒤에 책을 구입했어요.
'높고 푸른 사다리’는 야곱의 사다리에서 유래된 상징으로, 하늘로 향하는 길, 즉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정을 의미합니다. 이는 주인공이 세속의 삶을 내려놓고 하느님께 이르는 영적인 순례길에 들어섰음을 나타냅니다.
"침묵은 말보다 많은 것을 가르친다. 기도는 대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사랑은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내어주는 것이라는 걸 이제 알겠다.”라며 과거 연인과의 사랑, 그리고 하느님께 바치는 사랑을 대비하며 깨닫게 되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그려낸 책입니다.

지난 날의 추억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은 행복이고 기쁨입니다. 가족과 또는 여러 친구들과 왁자하게 떠들며 다니는 여행도 의미가 있지만, 이렇게 고요히 머물 수 있는 곳으로의 피정도 의미가 있습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따금 피정의 시간을 마주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