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점
- 8.0 (2007.05.23 개봉)
- 감독
- 이창동
- 출연
- 송강호, 전도연, 조영진, 김영재, 선정엽, 송미림, 김미향, 이윤희, 김종수, 차미경, 오만석, 백정임, 장혜진, 박규웅, 임광명, 이성민, 김영삼, 서영수, 김혜정, 조영숙, 황태옥, 조춘옥, 박명신, 신영주, 박보옥, 최선화, 고인범, 문성환, 신안진, 황필수, 염혜란, 백익남, 김민재, 이윤희, 차은재, 고서희, 이수진
2007년 이창동 감독이 만든 영화 〈밀양〉을 기억합니다. 오래도록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은 영화 중 하나였고, 그 스산하고 아픈 영화를 또 한 번 찾아보며 고통을 느꼈던 영화였습니다. 한국 여배우로는 칸 영화제에서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한 전도연은 깊은 내면의 연기를 잘 소화해 내는 여배우여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서울에서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와 새 삶을 시작하려는 신애(전도연)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슬픔을 감추고 애쓰며 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곧 아들이 유괴되고,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녀의 삶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신애에게 돈이 많다고 생각한 동네의 아는 사람에게 당한 끔찍한 일에 황망하기 그지없는 신애는 기독교에 귀의하며 위안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면회 간 교도소에서 범인이 내뱉은 “나는 이미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말 한마디에 무너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조차 그녀에게 구원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요하네스 브란첸(Johannes Brantschen)의 《고통이라는 걸림돌(Der Stachel des Leidens)》은 인간 존재의 핵심 문제인 ‘고통’에 대해 철학적·신학적으로 성찰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브란첸은 고통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심연을 드러내고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걸림돌’로 이해합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통은 삶의 ‘걸림돌’이자 ‘통로’
고통은 인간의 자율성과 일상성을 깨뜨리는 사건으로, 삶의 계획에 균열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그 걸림돌은 동시에 인간이 자신과 삶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질문하게 만드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회피보다 ‘직면’이 중요
현대 사회는 고통을 감추고 제거하려 하지만, 고통의 의미를 성찰하려면 그것을 피하지 않고 ‘마주함’이 필요합니다. 고통을 회피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인간의 성숙을 방해합니다.
고통을 통한 변화와 성숙
고통은 인간의 자아를 정화하고, 더 깊은 자각과 타인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고통을 통해 인간은 더 깊은 차원의 자유, 연민, 신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신 앞에서의 고통
신학적으로, 고통은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시험하는 상황입니다다. 하느님은 고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고통 가운데 ‘함께 계시는 분’이며 십자가의 예수는 고통 속에서 하느님이 어떻게 함께하시는지를 드러냅니다.
요하네스 브란첸은 이 책을 통해 고통을 없애야 할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지 않고, 존재의 근원에 닿게 하는 신비로운 ‘자극’이자 ‘초대’로 본다는 점에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정작 고통을 당하게 되는 당사자는 그 순간 존재의 근원에 닿게 하는 신비로운 자극이나 초대라고 생각하며 깊은 통찰을 할 수 있을까요? 책에서도 “쓰라린 인생 여정에 부닥치면 고통에 대한 정확한 신학적 지식은 오히려 불필요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신학자인 아일바흐는 “위기 중에는 어떤 새로운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미 살고 있는 것이나 인생의 좌우명 같은 것이 오히려 위기를 넘기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위기 중에는 어떤 말로도, 어떤 신앙적인 것도 위로가 되지 않음을 압니다. 수년의 세월 동안 그 고통을 이겨내고 난 뒤에 찾아오는 성숙한 내면이 바로 은총의 포장지였고, 선물이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 용서이고 회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남편을 잃고 아들마저 유괴되는 끔찍한 일을 당하고 그 사랑하는 아들이 살해되었다고 한다면 당사자는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살해범은 당사자가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하느님의 용서를 받았다고 밝은 얼굴로 얘기할 때 신애의 일그러진 얼굴을 기억합니다.

그녀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믿음과 회의, 분노와 용서의 복잡한 감정들이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이 영화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느끼는 인간의 감정과 종교, 용서, 구원에 대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홀로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을 일어서지 못하고 흐느껴 울던 이유는 많은 고통과 절망을 겪고, 하느님마저 원망하게 되는 그 감정을 함께 느꼈기 때문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많은 것 중에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었습니다.
영화 〈밀양〉은 신과 인간의 관계, 즉 ‘믿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과 피해자의 고통 사이의 역설, 상실 이후 삶을 다시 살아가는 회복의 시간을 보여주지만, 이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고통을 당한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찾아야 할 해답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브란첸은 다시 말합니다.
“고통은 제거되어야 할 장애물인가, 아니면 존재를 일깨우는 계기인가?”
현대인은 고통을 실패나 수치, 약함으로 간주하며 피하려 하고, 약이나 오락, 또는 소비와 업무 중독 등으로 고통을 덮거나 망각하려는 문화를 비정상으로 일깨웁니다. 고통은 삶의 일부이며,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고통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더 큰 내적 공허와 외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고통을 피나는 노력으로 이겨내는가 하면, 누군가는 덮거나 망각하려고 하며 살아낼 테지요. 처절한 고통을 겪은 신애는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다가 미장원을 방문하여 도움을 받습니다. 마당에 쓸쓸하게 뒹구는 나뭇잎과 물웅덩이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고통은 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삶의 진실에 이르게 하는 불편한 초대장, 고통을 피할수록 우리는 진짜 나를 만날 기회를 잃는다는 책 속의 문장이 지금의 신애를 힘 내게 할 수는 없습니다.
먼 훗날 신애를 다시 만났을 때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 고통이 정말 은총의 포장지였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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