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백석이 생각나는 길상사, 서울 성북동
돈암동에 사는 여동생과 나들이하기로 한 날, 맛있는 점심이 목표였습니다. 성북동 누룽지닭백숙으로 점심을 먹고 나니
디저트가 생각나 성북동빵집을 찾아갔고 배가 부르니 길상사를 걷자하고 찾아간 대도시의 길상사가 정말 하늘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매케한 대도시 안에 저렇게 신비하고 아름다운 정원과 고풍스런 절이 자리잡고 있다니요.
길상사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원래 ‘대원각’이라는 이름의 고급 요정이었던 곳을
법정 스님이 기증받아 사찰로 바꾼 곳입니다.
길상사는 ‘대원각’으로 1972년 요정업소로 운영되었는데 이곳의 주인이었던 고(故) 김영한(법명 길상화) 여사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명을 받아 이곳을 시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997년 12월 14일, 대원각이 법정 스님에게 기증되면서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는데 무소유 정신을 실천하시는 법정 스님은 이곳을 수행과 명상의 공간으로 만들었고, 이후 길상사는 서울 도심 속에서 불교 수행과 힐링의 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름다운 정원과 한옥 건축물의 사찰 내부는 과거 요정이었던 흔적을 간직한 한옥과 정원으로 꾸며져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백석(白石, 1912~1996)
길상사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시인 백석입니다.
백석과 대원각 여주인 김영한(길상화)의 이야기는 한국 문학사에서 잘 알려진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로 남아 있고 길상사를 걸으며 그들의 아픈 사랑을 생각하게 됩니다.
김영한(자야)은 젊은 시절 백석과 사랑에 빠졌지만,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와 집안의 반대로 인해 헤어졌습니다. 백석은 그 아픔을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에 담아냈으며, 자야도 평생 백석을 그리워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야는 백석이 떠난 후에도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결국 불교에 귀의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길상사의 탄생 뒤에는 단순한 기부 이상의 깊은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다시 길상사로 돌아와, 길상사는 다양한 불교 프로그램인 명상, 참선, 템플스테이, 법회 등이 정기적으로 열린다고 합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공간으로, 특히 조용한 산책을 즐기거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되는 곳입니다.
길상사를 나와 성북동을 거닐다 이태준 선생의 생가를 찾았는데 찾집 수연산방으로 바뀌었고 밥값만큼 비싼 차를 마시며 호사도 누렸습니다. 찻집으로 바뀐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소설가 이태준 선생도 기리고 사람들의 관심도 받게 한다면 또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북동엔 만해 한용운의 옛 집 심우정을 비롯해 오래된 한옥과 볼거리들이 많습니다. 따뜻해지고 꽃이 피면 성북동 나들이를 또 해야겠어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을 사랑한 자야는 일년에 한 번
단식을 했는데 그날이 백석의 생일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