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아우성, 초전공원을 가다
깜깜한 밤, 창밖에서 누군가 자꾸 부릅니다. 창을 열고 내다보니 길 건너 작은 숲속에서 새 한 마리가 구슬프게 누군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먹이 구하러 나간 엄마를 찾는 걸까요? 이 늦은 시간까지 엄마는 어딜 간 걸까요?

열무 삼십단을 이고/시장에 간 우리 엄마/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아주 먼 옛날/지금도 내 눈시울 뜨겁게 하는/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기형도, <엄마 걱정>
제가 좋아하는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입니다. 아마도 저 새는 엄마 걱정을 하느라 저리 울고 있는 듯합니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차를 타면 2~3분 정도 되는 거리에 공원이 있습니다. 집에 들어오면 나가길 싫어해서 가까운 거리인데도 2022년 이곳으로 이사 온 뒤 5번째 방문입니다. 주차장은 넓고 무료입니다.

야트막한 소나무 숲과 그 둘레를 둘러싼 시멘트 바닥이 싫어서 썩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숲속으로 들어가니 황톳길이 조성되어 있어 맨발 걷기(어싱) 할 수 있는 곳이 있었어요. 조금만 움직이면 이렇게 좋은 공원이 있는데 게으른 저는 왜 나갈 생각을 안 하는 걸까요?

생활체육공원인 경상남도 사천시 사남면의 초전공원은 지역 주민들에게 쉼터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2007년 12월에 조성된 이 공원은 약 33,057㎡(1만여 평)의 저수지와 여름철에는 조선홍연, 궁중연, 가시연, 백련 등 다양한 연꽃이 만발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고 해요.
소나무 숲을 한 바퀴 돌고 아래로 내려가면 나무 데크가 설치되어 있는데 연꽃과 수련이 물 위로 막 올라오고 있었어요. 그 모습들이 얼마나 예쁜지, 마치 병아리들이 작은 얼굴들을 불쑥불쑥 올리고 있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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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테니스장, 족구장, 게이트볼장 등이 마련되어 있고 공원 곳곳에 운동기구도 설치되어 있어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어요.
저수지 앞에 야외무대가 있어 음악회, 야외 돗자리 무료 영화 상영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는데 그런 행사에는 한 번도 가보질 못했습니다.

노란색 붓꽃이 천지로 피어나고 찔레꽃, 철쭉도 활짝 피었어요. 넓은 잔디 위에 벤치도 있고 그늘 아래 평상이 있어 일광욕과 산림욕을 즐길 수도 있게 되어 있어요. 인공폭포와 정자, 넓은 잔디 운동장에는 거대한 차광막이 설치되어 있어 쾌적한 환경이 좋습니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돌고 벤치에 앉아 가져간 책을 꺼내 잠깐 독서도 합니다. 날이 흐려 오랜만의 산책에서 햇볕을 받지 못했네요.

지난 위령성월 처음으로 죽음피정에 참여하였어요. 피정해주신 신부님께 선물받은 책을 읽다가 덮어놓았었는데, 다시 꺼내 처음부터 읽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에 대해 훌륭히 설명하느라 애쓰며 마치 고통에 능숙한 것처럼 행동합니다. 나 또한 그랬고 감동적 강론을 해왔지요. 하지만 사제들에게 침묵하라고 이르십시오. 사실 우리는 고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이걸 깨닫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요하네스 브란첸, 《고통이라는 걸림돌》, 바오로딸, 2021)
책의 첫 페이지 머리말에 있는 글입니다. 피에르 뵈이요 추기경이 55세를 일기로 임종하기 직전 유언으로 남긴 말씀이라고 합니다.
내가 직접 피나는 고통을 겪기 전엔 아무도 그 고통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내가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는데 섣부른 위로를 하는 것도 금물입니다. 그런데 그런 고통을 겪지 않은 추기경님이 그걸 깨닫고 우시며 또 그런 마음을 유언으로 남기셨다니, 첫 장에서부터 깊이 와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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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초전공원에서 하루 할당량인 5천 보를 걷고 돌아오니 무언가 해냈다는 마음으로 뿌듯합니다. 집에 들어오면 해야 할 일이 많으니 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는데 이제부터 조금씩 행동반경을 넓혀나가리라 다짐해 봅니다.
글을 끝내고 보니 숲에서 엄마 찾던 새가 울음을 그쳤어요. 장에 갔던 엄마가 돌아왔나 봅니다~^^
Tip 예화 하나 연못 바닥에 애벌레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연꽃 줄기를 타고 물 위로 올라간 수많은 친구가 함흥차사가 되어 돌아오지 않는 이유가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부터 누구든지 일단 물 위로 올라간 후에도 반드시 연못 속으로 되돌아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하도록 서로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연꽃 줄기를 타고 올라가서 물 위에 떠 있는 넓은 연꽃 잎사귀 위에 앉아 완전히 탈바꿈을 하자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잠자리로 변했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물속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연못 위로 날아다니면서 연못 속에 있는 친구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비록 친구들이 자기를 발견한다 할지라도, 이토록 아름답고 찬란한 모습으로 변한 자기가 바로 자기들과 같은 애벌레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