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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명옥헌의 배롱나무는 지금 얼마나 더 많이 자랐을까?

아봉베레 2025. 5. 1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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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 long time ago, 어느 해 배롱꽃이 가장 아름답다는 담양 명옥헌으로 배롱꽃 구경 가자는 속삭임을 들었어요. 직장에 다닐 때였는데 가차없이 월차를 내고 새벽 김밥 싸들고 담양으로 내달렸습니다. 서울에서 전남 담양까지의 거리는 3시간이 넘는 거리였지만 기꺼이 운전기사를 자청하고 떠난 길입니다.

명옥헌 앞 연못의 배롱나무

 

담양 명옥헌(鳴玉軒)은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민간 정원으로, 2009년 9월 18일 대한민국의 명승 제5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명옥헌의 기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 오희도(吳希道, 1583~1623)에게서 비롯됩니다. 그는 광해군 시절의 혼란을 피해 외가가 있는 담양 후산마을로 이주하여 '망재(忘齋)'라는 서재를 짓고 자연 속에서 은둔 생활을 하였습니다. 오희도의 별세 후, 그의 아들 오이정(吳以井, 1619~1655)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명옥헌을 조성하였습니다.

 

명옥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팔작지붕 구조의 정자로, 북향으로 자리잡아 연못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정자 앞뒤로는 네모난 연못이 있으며, 연못 중앙에는 둥근 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못의 형태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전통적인 세계관을 나타냅니다.

 
연못 주변에는 배롱나무와 소나무 등이 심겨 있어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냅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배롱나무꽃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며 많은 방문객들이 이 시기에 명옥헌을 찾습니다.

명옥헌 연못 앞 사진 기사님

 
사진을 찍는 기사님은 우리가 명옥헌을 둘러보러 올라갈 때 저 자리에 계셨었는데 1시간이 넘은 시간에 내려오니 그대로 저 자리에 계셨어요. 햇볕의 방향대로 연못에 비치는 배롱나무를 찍으시는지,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분이셨답니다.
 

명옥헌은 단순한 정원을 넘어 조선시대 선비들의 자연친화적인 삶과 철학이 담긴 공간입니다. 정철의 넷째 아들 정홍명(鄭弘溟)이 지은 '명옥헌기(鳴玉軒記)'가 전해지고 있으며, 계곡의 바위에는 우암 송시열이 썼다고 전해지는 '명옥헌계축(鳴玉軒癸丑)'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당시 문인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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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 아이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코 찔찔 흘리며 농사 짓느라 바쁜 엄마를 조릅니다. 배가 고프다구요. 그러면 엄마는 배롱나무를 가리키며 "저 꽃이 3번 피고 지면 쌀밥을 먹는다"고 합니다. 엄마의 말에 아이들은 꽃이 3번 피고 지는 순간을 기다리지요. 실제로 배롱나무의 꽃은 백일동안 3번이나 꽃을 피우고 지기 때문에 끈기와 인내의 상징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배롱나무는 백일홍나무에서 유래되었고, 백일(百日) 동안 꽃이 핀다는 뜻에서 ‘백일홍(百日紅)’이라고 불리는데, 이것이 변해서 ‘배롱’이 되었다고 합니다. 꽃은 분홍색, 진분홍색, 흰색 등이 피고 7월부터 9월까지 피고 오래 갑니다. 조선시대 궁궐이나 사찰, 서원 등에 심겨 기품 있는 나무로 여겨졌어요. 

명옥헌 뒷 후원

 
명옥헌은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과 철학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배롱나무꽃이 만개하여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후원 뒤 그늘에 앉아 가져간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한 컷
어느 해 배롱꽃

 

명옥헌에서 15분을 가면 소쇄원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방문한 곳이어서 남겨진 사진은 없습니다만,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담양 소쇄원(瀟灑園)은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지곡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별서정원으로,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통해 선비들의 이상을 구현한 공간입니다.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인 1530년경,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가 희생된 후 정치의 뜻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조성하기 시작하여, 후손들이 100여 년에 걸쳐 완성한 정원입니다. 이 정원은 양산보가 자연 속에서 학문을 닦고자 하는 뜻을 담아 조성한 곳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의 자연친화적 삶과 철학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소쇄원은 단순한 정원을 넘어 조선시대 선비들의 자연친화적인 삶과 철학이 담긴 공간입니다. 정원과 관련된 기록으로는 김인후가 지은 '소쇄원 48영'이 있으며, 이는 소쇄원의 풍경과 그 변화들을 48개의 시로 표현한 시집입니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

 
담양엔 볼거리가 많아요. 명옥헌에서 나와 소쇄원을 들르고, 그 다음 찾아간 곳이 메타세쿼이아 길입니다. 보라색 맥문동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저곳도 지금은 더 많이 울창해져 있겠지요.

담양 죽녹원에 핀 꽃범의 꼬리

 
명옥헌에서 소쇄원, 소쇄원에서 메타세쿼이아 길과 죽녹원의 대나무 숲길을 걸으며,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곧기는 뉘가 시켰으며/속은 어이 비었는가/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는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 중 대나무에 대해 옛말로 적혀 있던 시도 읊으며 다닌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다시 사진을 꺼내어 글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 시절 많이 힘들었던 이웃 언니와 저와 의기투합하여 떠났던 길이었기에 배롱꽃의 시기만 오면 못견디게 그리워하는 날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버릴 수 없는 추억이고, 떠나보낼 수 없는 날이기에 죽는 날까지 간직하고 싶어 재저장합니다.
 
이곳 제가 사는 곳에서 담양까지 고작 1시간 36분 거리, 올 7월 배롱꽃이 필 시기에 꼭 다시 찾아가 저 나무들이 얼마나 자랐을지 보고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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